1기 멤버 구성을 마친 Society of Editors가 지난 3월 12일 코사이어티 성수의 아늑한 공간에서 첫 번째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코사이어티 프로그램에 연사로 나서고, 행사 준비를 위해 손수 이름표를 만들고, 멤버 소개 리플릿을 만들고, 사진과 현장 기록을 맡아준 멤버들의 자발적 노력이 만들어 낸 자리라 더 각별한 현장이었습니다.
이 날은 S.O.E.S 멤버들이 만나고 싶은 에디터 선배, 혹은 에디터에서 업을 확장해 다른 영역으로 간 선배, 혹은 크리에이터로서 존경할 만한 점이 있는 선배를 섭외해 대화를 나누는 <S.O.E.S series 선배와의 대화>의 첫 프로그램이 시작한 날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로 모신 연사는 황선우 작가입니다. 20년간 에디터로 잡지를 만들어왔고 현재는 인터뷰집, 에세이 등을 펴내며 작가로 활동하고 계시죠. 후배 에디터들의 커리어 고민과 에디터십에 대한 질문에 귀한 생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공개합니다.
Q :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라고 생각하는가?
A : 에디터의 일은 기획과 실행인 것 같다. 기획이란 아이템을 찾아내고, 제안을 하고, 판을 벌이는 것까지 들어간다. 실행의 영역에서는 비주얼, 글 등 결과물을 만들어내서 보여주는 부분이다.
두 부분을 어느 한쪽이 약하지 않게 잘하고, 추가적으로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게 한다면 좋은 에디터가 아닌가.
과정이든, 결과물이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해나가야 하는데, 자기 세계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이해시킬 수 있는 점(능력)이 있어야 한다.
에디터는 패션, 뷰티 등 인더스트리에 기반을 두고 일한다. 자기가 속해서 일하는 산업 분야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좋은 에디터라고 생각한다.
Q : 미디어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콘텐츠도 많이 생겼다. 뉴스레터 안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고, 독립 매거진도 정말 많다. 여러 가지 플랫폼을 통해 자기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늘었다. 어떤 것은 발견되고 호응을 얻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에게 선명하게 인식되고, 반응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는 콘텐츠는 어떤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A : 각자 좋아하는 콘텐츠가 다를 것이다. 내가 느끼는 요즘 콘텐츠의 신기한 부분은 감상자, 내지는 독자, 소비자의 자의식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세련된 취향, 앞서가는 지식, 인사이트를 갖고 있어서 약간은 도도하게 "알려줄게"라는 자세를 취하고, 그게 먹혀들어 갔다. 요즘 각광받고, 사랑받는 콘텐츠에서는 눈높이를 맞추는 태도들이 보인다.
"거기 잘한다"라고 평가하는 말을 하는데 소비자들이 평론가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모두가 평가하고 있는 거다. 아무리 웰메이드라 하더라도 잘난 척하는 태도가 먹히지 않는 것 같다. 공감이 되었건, 인사이트의 발견이 되었건 그것을 소비, 감상하는 사람에게 열어두고 그 사람이 찾아낸 것을 존중해 주는 태도가 먹히는 것 같다.
Q : 숫자가 콘텐츠의 퀄리티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조회수가 낮으면 내가 뭘 잘못 만들었나 하는 마음 때문에 지속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A : 냉정한 시대인 것 같다. 모든 것이 숫자로 나오고, 뷰수, 팔로워수 등 수치로 측정된다. 내가 일을 시작할 때만해도 낭만적인 시대였다(웃음).
그 사람은 숫자로 나를 평가할지언정, 나 자신은 거기에 굴하지 않는 곤조, 자존심(웃음)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그 숫자를 무작정 쫓아가지는 않더라도 너무 자만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터진다'라고 말하는 것들에 요즘 사람들의 취향이 분명히 있다. 무조건 쫓아가면 당연히 망하지만 알고는 있어야 한다.
숫자가 잘 안나올 때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스스로를 보호하면서도, 어쩌다 숫자가 잘 나왔을 때는 엄청 과대평가 해야한다. 스스로가!(웃음)
태세 전환을 아주 빠르게 할 수 있는 뻔뻔함이 필요하다.
Q :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편집부 없이 일하는 에디터가 많아졌다. 오롯이 혼자 실력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후배에게 어떻게 실력을 키우면 좋을지 조언을 부탁한다.
A : 요즘 콘텐츠 업계의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실력과 권위가 있는 선배가 내 글을 만져준다는 것도 있지만, 내가 아닌 타인의 눈으로 내 것을 볼 때 객관적으로 훨씬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요즘은 팩트 체크, 윤문 확인, 편집을 거치지 않고 게시되는 글이 많아졌다는 것은 큰 위기인 것은 맞다. 구조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단 혼자 해야 한다면 자기가 잘하는 수밖에 없다. 매일 역량을 키우는 일 말고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동료의 역할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회사 밖, 이런 커뮤니티도 좋다. SNS를 통해서도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나의 취향, 나의 문장을 오픈 시켜놓고, 수정도 받고, 공감도 하는 과정은 필수적인 것 같다. SNS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조직 안에 편집장님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뒷배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조직에 속에 있을 때에는 혼자 공부해야 하는 부분은 있었다.
영화 관련된 지식, 패션 디자이너에 대해, 미술에 대해, 이런 것들은 눈치것 자기가 공부해야 도태되지 않는다. 선배들이 원고에 대해서는 터치를 해주지만, 보이지 않는 빙산 아래의 부분은 혼자 찾아가서 공부해야 한다. 그때 책도 많이 보았다.
많은 동료, 스텝과 일을 해도 결국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은 혼자해야 한다. 혼자만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렇게 공부해야 도태되지 않는다는 점이 에디터 일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다.
S.O.E.S 멤버들의 명함 교환식 & 스몰 토크
선배와의 대화 이후에는 참석한 멤버들이 파트너를 바꾸며 계속되는 왈츠 댄스처럼 릴레이 명함 교환식을 진행했습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가진 업계 동료가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그들과 나는 손 닿는 거리에 있다’는 감각을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얼마 전, 저희 커뮤니티에서 노리나 허츠의 책 <고립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는데요. 관련 기사에 인상적인 문장이 있었습니다.
“우정을 사는 게 쉬워질수록 우리는 가족, 친구, 동료 시민을 돌보는 노력을 안 할 거예요. 렌트어프렌드 회사에서 바우처를 살 수 있는데, 뭐하러 굳이 연로한 아버지를 방문하고, 대학 동창의 뻔한 이야기를 들어주겠어요? 우정을 거래하는 관계에 빠져들수록 타협과 호혜의 근육을 단련할 기회가 사라져요.”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서 타협과 호혜의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 당연히 쉽지 않을 거예요. 상품화된 커뮤니티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에 비해 감정을 더 써야 하고, 에너지가 들겠지요. 그런데 그 수고로움 덕분에 진짜 가치있는 무언가가 만들어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저마다 조금씩 수고해준 덕분에 생겨난 공동의 자산 같은 것, 누구 한 명이 독점할 수 없는 그런 것.
이렇게 저희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동료애를 나누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미약한 시작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세요.
고맙습니다.
사진 © 김민주, 오우리